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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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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0

한근태 소장의 칼럼입니다

고급승용차일수록 불량률이 높다. 고급전자 제품도 그렇다. 옵션의 태반은 쓸데없는 것이다. 평생 한 번도 쓰지 않는 옵션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옵션인가? 가격을 올리기 위한 옵션일게다. 2008년 필립스는 반품으로 10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는데 반은 사용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고수들 집은 단순하다. 딱 필요한 것만 있고 훤하게 비어있다. 고승의 방은 한결같이 텅 비어 있다.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나 장식이 일절 없다. 덮고 자는 이불도 벽장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수들 집은 복잡하다. 쓰지 않는 물건, 쓸데없는 잡다한 물건으로 차고 넘친다. 사람이 물건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물건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뭔가를 산다.

고수들은 여행 할 때 짐이 가볍다. 여행 때 무거운 짐이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출장의 달인 김우중 회장은 수없이 장기출장을 다녔지만 짐을 부친 적이 없다. 늘 핸드캐리어에 들어갈 만큼의 짐만을 갖고 다녔다. 김용섭 비서는 처음 출장 때 혼자 짐을 부쳤다 일행을 놓쳐 낭패를 보았다고 얘기한다. 바람의 여인 한비야도 늘 베낭에 들어갈 만큼만 짐을 갖고 다녔다.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 여행 횟수가 늘수록 짐을 적게 다니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하수들은 2박 3일 여행에도 이민가방 비슷한 것을 갖고 다닌다. 짐에 치여 여행이나 제대로 하는 지 모르겠다. 나는 큰 가방 안이 궁금하다. 도대체 그 짧은 기간 여행하면서 저렇게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무얼까? 혹시 부엌살림을 다 갖고 다니는 걸까?

가방 끈 길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가 두꺼울수록 내용은 부실하다. 부실한 내용을 양으로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말이 길수록 요점이 없다. 세상 진리다. 장욱진의 그림은 작다. 유화는 2호에서 4호 정도다. 현실적인 이유다. 혼란기에 큰 그림은 이래저래 짐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그림 그리는데 크기가 어째서 문제인가. 조형성을 추구하는 데 이 정도 사이즈면 충분하지. 크게 그리려다 보면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리지 않아도 될 걸 그리게 된다. 하지만 작은 데 그림을 그리면 내가 꼭 그리고 싶은 것이 무언지 생각하게 된다. 쓸데없이 물감과 화폭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고집 부리려고 작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작은 그림은 친절하고 치밀하다.” 고수다운 면모다. 본질이 무언지를 알고 있다.

연세대 명예교수 송복은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핸드폰은 사업하는 사람, 바삐 돌아가는 사람에게나 필요합니다. 걸어가면서 조용히 생각해야 하는데 핸드폰은 방해가 됩니다. 우리 나이가 되면 사회 관계를 최대한 단순화해야 합니다. 핸드폰은 사회관계를 복잡하게 합니다. 단순화를 시켜야 지적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데 바쁘면 사유할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뭐가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방해 받지 않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글 쓰는 도중 오는 짧은 전화는 리듬을 깨기 때문이다.

고수들은 단순함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단순한 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화가도 조각가도 그렇다. 성숙한 경지에 이르면 단순해진다. 거기 모든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단순함이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내고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으로 이루어진 결정체 같은 것이다. 본질적인 것만 집약된 모습이다. 복잡한 것을 다 소화하고 나면 어떤 궁극의 경지에 이른 상태다.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가진 것이 적어야 하고, 불필요한 관계가 정리되어야 한다.” 법정의 말이다.

“내 만트라 가운데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이다. 단순함은 복잡한 것보다 더 어렵다. 생각을 명확히 하고 단순하게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일단 생각을 명확하고 단순하게 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나는 촘촘한 계획 대신 듬성듬성한 계획을 좋아한다. 약속과 다른 약속 사이에 빈틈을 많이 둔다. 그게 효과적이다. 여유가 있다. 앞선 사람과의 얘기를 복습하고 하기로 한 일을 다짐하기도 하고, 다음 사람과 만나 무슨 얘기를 할까, 어떻게 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궁리도 한다. 여유가 있기 때문에 먼 거리가 아니면 걸어서 움직인다. 걷다 보면 새로운 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빈 날은 빈대로 놔둔다. 억지로 약속을 만들어 채우지 않는다. 빈 것이 있어야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빈 것은 빈대로 좋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사실 단순하다. 일하고 운동하고 가족들과 시간 보내는 외에는 거의 약속하지 않는다. 피치 못하게 만날 때도 저녁 약속은 되도록 피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 애들은 나를 사회부적응자라고 놀린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내가 좋고 행복한데 무슨 상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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