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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최정환
224
2016-12-21
상담이나 강연은 나한테 새로운 경험이었다. 40세 이전까지 난 반장이나 무슨 대표가 되본 적도 없고 앞에 나서는 일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되다니 사람 팔자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상담은 사실 1대 1로 진행하는 것이라 상대적 ( ? ) 으로 쉬웠다. 사실 상담이라기 보다는 아파트학 과외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 강연이나 상담을 하게 되면서 어릴 때 소망을 많이 이룬 면도 있다. 우선 강연을 나가면 참석자들은 나를 '교수님' 이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신문에 컬럼을 쓰면 컬럼리스트가 되지만 무조건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이런 경우엔 팔자에도 없는 기자가 되었다. 또 책을 여러권 내면서 작가라는 호칭도 얻었다. Y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는 2년간 부동산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한 것을 가지고 Y 대 교수라고 자신의 이력서에 넣은 것을 봤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내가 불과 2년 3년만에 교수. 작가, 기자가 됐으니 나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우쭐함 ( ? ) 도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난 내 분수를 잘 안다. 교수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그냥 부동산에 대한 알고 있는 지식은 전파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내집장만의 소중함을 알려 주고 싶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강연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남은 강의가 하나 있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나 '서프라이즈' 라는 프로에 소개될 법도 한 일이다. 실제로 방송국에 내 이야기를 써서 보낼까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니까. 때는 2006년 가을. 한참 기업 등지에서 강의에 열을 올릴 즈음 안양평촌 지역 공인중개사 모임에서 부동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강의 장소는 안양대학교의 한 강의실이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요청받으니 진짜 교수가 된 기분이었다. 초대를 받고 기분이 좋은 이유는 또 있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다. 당시 안양대학교 러시아어과에는 대학 1년 선배가 교수로 있었다. 그 교수는 79학번으로 1년 선배였지만 재수해서 대학에 입학한 나와는 나이는 같았다. 우리는 러시아어 합창단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 후 그녀는 우리과 선배와 결혼을 하고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을 갔었다. 그 후 그 녀를 만난 것은 내가 92년에 모스크바에서 어학 연수를 할 때였는데 그 이후 15년간 한국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한 사람은 안양에서 부동산을 하시는 친구 형님이었다. 안양에서 내가 아는 두 사람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한시간을 차를 몰고 안양에 갔다. 그런데 안양 시내에 이르러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가 건널목에 서게 됐는데 바로 친구 형이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것이었다. 한 시간동안 생각을 하고 갔는데.... 안양 인구가 100만인데...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안양 대학교에 가서 일어났다. 언덕위에 있는 대학으로 올라간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강의실 건물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3층인가 올라갔을 때 한 여성이 내려오고 있었다. 바로 79학번 선배였다. 16년만에 만났으니 나를 처음에는 잘 못알아봤지만 나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안식년을 맞아 학교에 1년간 안나왔는데 그 날 그 시간에 학교에 자료를 가지려 나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마치 두 사람이 내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보이지 않는 힘이 두 사람을 내 눈 앞에 데려다 놓은신 것 같았다. 명함을 주고 받고 난 강의실에 흥분한 채 들어갔다 ( 계속 )
rich (2016-12-21 10:06)
상담이나 강연은 나한테 새로운 경험이었다. 40세 이전까지 난 반장이나 무슨 대표가 되본 적도 없고 앞에 나서는 일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되다니 사람 팔자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상담은 사실 1대 1로 진행하는 것이라 상대적 ( ? ) 으로 쉬웠다. 사실 상담이라기 보다는 아파트학 과외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 

강연이나 상담을 하게 되면서 어릴 때 소망을 많이 이룬 면도 있다. 우선 강연을 나가면 참석자들은 나를 '교수님' 이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신문에 컬럼을 쓰면 컬럼리스트가 되지만 무조건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이런 경우엔 팔자에도 없는 기자가 되었다. 또 책을 여러권 내면서 작가라는 호칭도 얻었다. Y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는 2년간 부동산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한 것을 가지고 Y 대 교수라고 자신의 이력서에 넣은 것을 봤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내가 불과 2년 3년만에 교수. 작가, 기자가 됐으니 나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우쭐함 ( ? ) 도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난 내 분수를 잘 안다. 교수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그냥 부동산에 대한 알고 있는 지식은 전파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내집장만의 소중함을 알려 주고 싶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강연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남은 강의가 하나 있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나 '서프라이즈' 라는 프로에 소개될 법도 한 일이다. 실제로 방송국에 내 이야기를 써서 보낼까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니까. 

때는 2006년 가을. 한참 기업 등지에서 강의에 열을 올릴 즈음 안양평촌 지역 공인중개사 모임에서 부동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강의 장소는 안양대학교의 한 강의실이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요청받으니 진짜 교수가 된 기분이었다. 초대를 받고 기분이 좋은 이유는 또 있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다. 당시 안양대학교 러시아어과에는 대학 1년 선배가 교수로 있었다. 그 교수는 79학번으로 1년 선배였지만 재수해서 대학에 입학한 나와는 나이는 같았다. 우리는 러시아어 합창단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 후 그녀는 우리과 선배와 결혼을 하고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을 갔었다. 그 후 그 녀를 만난 것은 내가 92년에 모스크바에서 어학 연수를 할 때였는데 그 이후 15년간 한국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한 사람은 안양에서 부동산을 하시는 친구 형님이었다. 안양에서 내가 아는 두 사람을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한시간을 차를 몰고 안양에 갔다. 

그런데 안양 시내에 이르러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가 건널목에 서게 됐는데 바로 친구 형이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것이었다.  한 시간동안 생각을 하고 갔는데.... 안양 인구가 100만인데...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안양 대학교에 가서 일어났다. 언덕위에 있는 대학으로 올라간 나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강의실 건물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3층인가 올라갔을 때 한 여성이 내려오고 있었다. 바로 79학번 선배였다. 16년만에 만났으니 나를 처음에는 잘 못알아봤지만 나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안식년을 맞아 학교에 1년간 안나왔는데 그 날 그 시간에 학교에 자료를 가지려 나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마치 두 사람이 내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보이지 않는 힘이 두 사람을 내 눈 앞에 데려다 놓은신 것 같았다. 명함을 주고 받고 난 강의실에 흥분한 채 들어갔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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